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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교 연구의 회고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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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교 연구의 회고와 과제
- 김낙필(원광대 동양종교학과 교수, 한국기공학회, 한국도교문화학회 회장)

I. 머리말 

 
도교사상은 유교사상 및 불교사상과 함께 우리 나라의 전통사상을 구성하는 삼대 요소의 하나이다. 그러나 도교사상이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을 과소 평가할 수 없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공감하지만 유, 불에 비해 한국 도교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그 원인은 우선 도교에 관련된 직접적 문헌자료가 많지 않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도교사상의 경우 이를 주체적으로 담당하는 계층(불교 교단이나 유림과 같은)이 뚜렷하게 역사적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도교사상은 은둔적 지식층이나 민중들간에 면면히 전승되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 결과 뚜렷하게 도교 고유의 자료라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된 것이다. 직접적 자료가 적은 대신 한국문화의 다양한 분야에 도교사상의 편린들이 숨어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도교사상은 불교나 유교, 민간신앙 속에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의학, 문학, 예술, 전통적 과학 등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숨어 있는 도교적 요소들을 드러내어 종합적으로 밝히는 것이 쉽지 않음은 알 수 있다. 또한 중국도교에 대한 연구도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일반적 추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확산되어 많은 연구업적이 축적되었으며 한국도교 연구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도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효시는 1930년대 무렵 출판된 이능화(1868-1945)의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 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도교의 연구는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째 태동기로서 이능화로부터 해방 이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능화의 연구 이후 한국도교 연구는 상당 기간 공백기에 접어든다. 이 분야에 관한 관심이 다시 대두된 것은 문학 방면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 중반에 국문학, 중국문학 등의 영역에서 도교사상이 문학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과정 중 한국도교의 연구가 촉발된 것이다. 이 시기로부터 현재까지의 연구는 1980년대 초 도교 관련 전문학회가 설립될 때까지를 한국도교에 관한 관심의 발흥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여러 영역에서 한국도교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고조된 시기이다. 셋째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도교학회, 한국도교사상연구회(현재는 한국도교문화학회) 등의 전문학회가 조직되어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를 한국도교 연구의 정착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1997년도 이후에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선도(仙道), 기공학(氣功學), 기과학(氣科學)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결실로서 도교관련 전공이 대학원에서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특기할만하다. 이 흐름은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서 한국도교 연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 시기를 독립된 또 다른 흐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정착기에 포함시켜 논의를 진행시키기로 한다.


 II. 태동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는 중국도교사 자체에 대한 외국 학자들의 통사적 업적이 태동단계에 머무는 시기(1930년대)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국학을 진흥한다는 애국적 동기에서 한국도교의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는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으로부터 자료라든지 도교에 관한 인식의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규경은 한국 도교의 원류라던가 역사적 전개과정에 최초로 체계적 인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이규경은 도가와 도교를 구별하는 관점도 지니고 있었고 중국도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규경에게는 유학자적인 시각을 여전히 지니고 도가 및 도교사상을 이단시한 면이 보인다. 이에 반해 이능화는 국학자답게 민족 주체적 시각을 도교연구에 반영하였다. 한국의 고유사상을 선도(仙道)라고 규정하고 도교의 원류가 한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의 {조선도교사}에서는 한국고유사상이 선도적 성격이 강하고 신선설화의 원류가 한국에 있음을 역점을 두어 밝힌다. 이 밖에 도교적 제천의례를 높이 평가하여 민족의 자주정신을 선양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도 그 시각의 연장이라 할만하다. 이능화는 이 밖에 도교와 불교의 습합 현상, 도교와 민간신앙, 도교와 신종교와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도교연구의 폭을 높였다. 그러나 조선조의 도가철학에 관한 연구는 의외로 빈약한 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조에서의 소격서(昭格署) 혁파를 둘러싼 논변에 상세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특이하다.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그의 연구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지녔다는 것 외에도 자료의 한계라든지 자료에 대한 문헌비판적 검토가 부족했다는 것 등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그의 {조선도교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체계적인 도교사의 서술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도교연구가 자료나 문제의식의 범위에서 최근까지 그의 {조선도교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신채호나 권상로의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이능화의 연구만큼 체계적인 것은 못되나 한국 고유사상의 특징을 선도로 규정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김유동(金?東)의 {도덕연원(道德淵源)}에는 조선시대의 여러 도교문헌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 {해동이적(海東異蹟)}, {청학집(靑鶴集)}이나 야담을 종합하여 정리한 한국의 도교 인물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연구에도 국학자적 애국의식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이능화나 신채호 등과 비슷한 노선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태동기에 제기된 문제 가운데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은 한국도교의 기원문제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사상과 우리 나라에서 고대로부터 흘러왔던 고유사상과의 관련문제로서, 도교사상이 우리 나라 고유의 고대사상과 매우 상통한다고 추측되는 데서 초래된 문제이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고조선시대의 고신도(古神道)사상의 지류(신선설화)가 중국으로 흘러가고 중국에서 다시 우리 나라로 전승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도광순 등도 이 견해를 따른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입증하거나 반증할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으므로 앞으로의 연구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견해와 관련되면서 제기되는 문제는 한국고유의 사상과 중국에서 전승된 도교사상과의 개념 구별이다. 이는 특히 한국사상의 고유성을 논의할 때 거론되는 문제로서 이의 거론근거는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고대의 풍류도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는 폭을 지녔다고 보는 데 있다.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도 최치원의 기록을 원용하면서 고유사상을 신도(神道), 중국에서 전승된 사상을 선도(仙道)라 구별한 바 있다.

신선사상의 원류가 한국에 있다면 한국도교의 연구는 마땅히 고대사상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며 실제로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도교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이라면 중국도교의 전래 이후부터가 연구의 기점이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일단 한국 고유의 고대사상과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사상을 구별하여 따로 연구한 후 그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 생산적으로 보인다.


 III. 발흥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가 1977년 이종은(李鍾殷)에 의해 국역되고 차주환(車柱環)의 개척적 노작인 {한국의 도교사상}이 출판되면서부터 한국의 도교연구는 문학의 분야에서 차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전후하여 이종은의 {韓國 詩歌上의 道敎思想 硏究}가 출판되었다. 한편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듯 한국도교 연구의 초기 단계는 국문학, 또는 중문학계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야의 중요업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차주환의 {한국의 도교사상}
이능화의 {조선도교사}가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면 이를 토대로 자료를 학문적으로 해석하면서 서술한 최초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아직 도교가 충분히 소개되지 못함을 감안하여 도교에 관한 개괄적 소개도 포함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자료가 의거하는 범위는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바탕하고 있으나 도교의 기원문제나 신선사상의 전래문제에 대한 관점에서는 보다 객관적이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밖에 조선조의 도교의학에 관한 부분을 새롭게 부각시킨 면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이 책은 필자가 인정하듯 도교사에 대한 통사적 서술이라기보다는 논문모음집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내용에 약간의 중복이 있다.

2) 이종은의 {韓國 詩歌上의 道敎思想 硏究}
한국문학 작품, 그 중에서도 시가에 나타난 도교사상을 밝혔다. 그 동안 주로 유교적 시각에서 접근하던 전통에서 새롭게 도교사상과의 관련에 주목함으로써 이후의 국문학계의 한국도교연구의 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3) 이종은의 {조선도교사역주}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를 국역한 것으로서 한국도교사상연구에 기반을 형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문의 충실한 번역에 치중하였으나 주석작업의 측면은 미진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의 도교학계의 일천한 학문적 역량을 고려할 때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만하다.

한국도교 분야에 관한 관심이 철학계로 확산된 데는 1979년 한국철학회에서 {한국철학연구(上中下)}를 편집, 발행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한국철학사를 쓰기 위해 유, 불, 도 삼교를 균형 있게 탐구한다는 의도 하에 기획되었다. 그러나 도교분야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듯 유, 불에 비해 매우 소략한 편이다. 한국철학회에서 1987년에 발행한 {한국철학사(上中下)}에도 {한국철학연구}와 유사한 정도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으며 도교분야의 연구도 {한국철학연구}에 비해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 후에 나온 몇 가지 한국사상사에 관한 통사적 서술을 보더라도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후의 한국도교 연구의 성과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중국도교의 경우 중국사상사의 서술에서 유, 불과 점차 균형 있게 서술되는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도교사상의 근본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일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둘째, 한국도교의 경우 세계관이나 실천론이 지니는 특징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하며 셋째, 유교나 불교에 비해 한국도교가 담당해왔던 역사적, 사회적 역할에 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집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이 해결되어야 한국사상사에서 한국도교가 균형 있게 다루어질 것이다.

한편 한국철학회에서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거둔 또 하나의 소득은 철학적 모색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도교의 개념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논의는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이 분야의 연구가 진일보하는 계기를 형성하였다.

도가와 도교의 개념설정의 문제는 도교연구의 범위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으로서의 도가사상과 신선사상, 민간도교 등의 여러 요소가 혼합된 종교로서의 도교를 구별하자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도가철학과 도교사상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각각의 사상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방법론적 반성에서 대두된 입장이다.

이는 비교적 일찍부터 도교사상에 관심을 기울였던 국문학 및 중문학계에서부터 거론되었다. 예컨대 이종은은 철학으로의 도가철학과 종교로서의 도교사상의 구별을 역설하고 이능화가 양자를 구별하지 않은 것은 방법론상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문학의 영역에서 실제로 발표된 연구 업적에는 양자를 구별하는 입장이 엄밀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이와 같은 경향은 문학적 소재뿐만 아니라 도교사상의 여러 분야를 포괄하여 폭넓은 소재를 다룬 차주환의 {한국도교사상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그 역시 구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실제로는 편의상 도교연구에서 도가철학을 제외시키지 않고 있다. 그 구별이 문학적 탐구 분야에서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양자의 구별이 철학계에서 거론된 것은 1979년 한국철학회에서 출판된 {한국철학연구}를 통해서이다. 그 책 중 도교관련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논평자들은 대체로 그러한 구별이 필요함을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1987년 출판된 {한국철학사}에 이런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입장은 도교사상으로부터 도가철학적 요소를 선명하게 분리시킴으로서 순수한 철학적 탐구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일단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도교사에서 도가와 도교가 사상적 연속성을 지니며 내려왔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아 속단하기 어렵다. 한국도교의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실제로 한국사상사에서 도가 및 도교사상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도가사상을 수용해 형성된 도교의 철학적 측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두 가지를 고려하면 양자를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것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경우 도교의 전개 모습은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은둔적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신선사상, 둘째 교단적 체제를 갖춘 교단도교, 셋째 소박한 민중들간에 유포된 민간도교적 양태이다. 이것은 물론 절대적인 구분기준은 될 수 없으나 도교에 접근할 때 매우 유용하다. 여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도가(道家)사상도 도교사상의 범주에 포함시켜 한국도교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윤찬원의 \\"도교개념의 정의에 관한 논구\\"에서도 도교와 도가의 개념규정에 관한 여러 주장들을 검토한 끝에 도가와 도교간의 불연속성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발흥기는 한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나 아직 충분히 개화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도교 자체에 대한 연구부분에 있어서 근거 자료나 문제에 대한 접근의 시각이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IV. 정착기

 
한국 도교뿐만 아니라 도교 일반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한국도교학회(1982년)와 한국도교사상연구회(1984년)의 창립이었다. 이들 두 학회는 창립 이래 각각 독자적 연구지를 출판해 오고 있다. 도교학회에서는 {도교연구}란 책명 하에 모두 12권을 출판하였으며 한국도교사상연구회(오늘날은 한국도교문화학회)에서는 {도교와 한국사상}(1987), {도교와 한국문화}(1988) 등의 주제 하에 모두 12권의 논문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연구자의 수나 연구여건이 미비한 현실에서 학회의 분화는 연구역량의 분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학회의 결성을 계기로 한국도교 연구는 대체로 몇 가지 방향에서 진일보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국문학, 철학의 측면뿐 아니라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의학, 종교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접근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문학계에서는 최삼룡의 {한국 초기소설의 도선(道仙)사상}, 최창록의 {한국 신선소설 연구}, 이종은의 {한국문학의 도교적 조명}, 최삼룡의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이연재의 {고려시와 신선사상의 이해}, 김용범의 {도교사상과 영웅소설} 등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철학적 시각에서는 송항룡의 {한국 도교철학사}가 발표되었다. {한국 도교철학사}는 비록 노장철학에 치중했다는 특징을 보이긴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을 포착하려 했다는 면에서 주목할만한 결실로 평가할 수 있다. 김낙필의 『권극중(權克中)의 내단(內丹)사상』에서는 내단사상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한편 최혜영의 『조선 후기 선서(善書)의 민간윤리사상』에서는 조선 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에 체계적으로 접근하였다. 한의학과 도교의 관계에 관해서는 김낙필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도교적 성격" 및 정우열의 "동의보감과 허준(許浚)의 의학, 도가사상"에서 논의한 바 있다. 이 밖에 신선을 목표로 하는 대신 건강을 초점으로 하는 도교적 양생론에 관해서는 이진수의 "조선양생사상성립에 관한 연구 1-4" 및 "퇴계철학의 양생사상에 관한 연구" 등에서 검토하고 있다. 종교학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대표적 업적으로서는 김승혜의 "동문선 초례청사(東文選醮禮靑詞)에 대한 종교적인 고찰"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적 연구가 그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대표적 업적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최창록, {한국 신선소설 연구}
조선조에 성립된 {해동전도록}, {해동이적}, {청학집}, {증보해동이적(增補海東異蹟)}, {오계일지집(悟溪日誌集)} 등을 중심으로 한 여러 신선전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문학적 가치를 드러내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이들을 문헌 비판적으로 고증하는 작업보다는 이들에 바탕을 둔 공통된 구조와 독특한 유형을 분류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2) 이연재, {고려시와 신선사상의 이해}
이 책은 고려시대의 한시문학에 중점을 두어 그 속에 표현된 신선사상을 주제로 한 여러 테마의 선시어(仙詩語)의 유형적 특징을 분석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동안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에 수록된 자료에 의존하던 연구를 {동문선(東文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의 자료에까지 넓히고 도가 및 신선사상 일반을 폭 넓게 다루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 송항룡, {한국 도교철학사}
이능화 이래 소홀히 되었던 도가철학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밝힌 업적이다. 그는 도교사상과 도가철학을 구분할 것을 제의하면서도 이 책은 도교철학사란 주제 하에 오히려 도가철학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조선조의 도가철학에 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서경덕으로부터 {순언(醇言)}을 통해 나타난 이율곡의 도가철학, 박세당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한원진의 {장자변해(莊子辨解)}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중 서경덕을 도가철학적 인물로 제시한 것이 특이하며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서명응의 {도덕지귀론(道德指歸論)}, 홍석주의 {정로(訂老)}에 대한 논의는 불충분한 편이다.

4) 최삼룡,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김시습과 허균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한국 초기소설의 도선(道仙)사상 연구}를 확대, 발전시킨 작품으로서 시가가 아닌 주로 소설이나 설화의 측면에서 도교사상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한국 고대의 설화들에 나타난 신선사상적 요소를 밝히고 선가인물들의 계보를 추적하였다. 이어 {남궁두전(南宮斗傳)}, {최고운전 (崔孤雲傳)}, {전우치전(田于治傳)}, {금신선전(金神仙傳)} 등의 선도소설을 집중 분석하였다. 도선사상이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며 폭넓은 도교적 지식이 농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5) 김낙필, 『권극중(權克中)의 내단(內丹)사상』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은둔적 내단사상가인 권극중의 작품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를 철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연구이다. 유가적 지식층들의 신선사상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고 이를 도교적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내단사상을 체계적으로 정초했다는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그리하여 유, 불과 다른 내단사상의 본체론, 인성론, 실천론 등을 어떻게 제시했는가를 드러냄으로써 한국사상사에서의 위치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권극중의 성리학적 입장과의 종합적 고찰은 미진한 편이다.

6) 최혜영, 『조선후기 선서(善書)의 윤리사상』
권중현의 {공과신격(功過新格)} 등 한국에서 이루어진 선서를 중심으로 그 속에 포함된 삼교융합(三敎融合)적 윤리사상을 분석하였다. 조선후기에서 신종교 발생에 이르는 사상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유익한 업적이다. 이 글에서는 민간도교의 민중의식, 삼교융합 사상, 소박한 충효인 사상 등이 지닌 사회적 맥락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7) 최창록, {한국 도교문학사}
이전에 출판된 {한국신선소설연구}를 포함하면서도 광범하게 도교와 한국문학과의 관계를 논의한 책이다. 그 범위는 단군신화의 선도적 해석에서부터 동문선(東文選)의 초례청사(醮禮靑詞), 여러 종류의 신선전, 도교 소설 등을 망라하고 있다. 나아가 80년대의 대중선도소설인 단의 성격까지 검토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부록으로 도교문학관련 자료를 집대성하여 이해를 돕고 있는 것도 유익한 자료이다. 이 책은 논문을 집대성한 것이므로 단일한 주제의식을 지니고 일관성 있게 논의를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8) 민영현, {선(仙)과 한}
한국 고유사상의 특징을 '선과 한'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한국사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핀 책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고대 사회에서의 신화를 분석하여 고려 이전과 고려 이후로 나누어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탐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치원과 김시습에 주목하여 이들이 가장 전형적으로 고유사상을 구현한 인물로 파악하고 민족종교에로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고찰하였다.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재야사학의 시각을 따르면서도 이를 비교적 차분하게 논구 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사상의 고유성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선도와 중국의 도교를 엄밀히 구별하고 도교를 주로 민간신앙의 차원으로만 제한하려 한 것은 무리한 느낌을 준다.

9) 박삼서,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도교사상적 배경을 살피고 최치원, 이규보, 김시습, 허균, 박지원, 홍만종 등의 작품에 나타난 도교사상적 요소를 고찰하였다. 이중 현대적 인물인 신석정의 시에 나타난 도교적 성격을 분석한 것이 흥미로우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시조설화나 향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삼국유사}의 도교적 성격을 드러내려 한 데 있다. 그 동안 {삼국유사}의 설화는 주로 불교사상과 관련시켜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만큼 심도 있는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느낌이다.

10) 정재승 편, {봉우일기}
현대의 한국선도 인물인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의 사상에 관한 자료집이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한국 도교를 연구하는 데나 한국 선도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이상과 같은 문학에서의 도교연구에 비하면 역사적 시각에서의 도교연구는 부진하였다. 사학계의 엄밀한 연구가 인문학의 기초인 것을 감안하면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서도 도교적 역사의식이 보다 자주적 민족사관에 입각했음을 밝히는 논문에는 한영우(韓永愚)의 "17세기의 반존화적 도가사학"이 있다. 한영우의 논문은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의 성격을 분석한 것인데 그는 우리의 전통사학을 유교사학, 불교사학, 도가사학으로 구분하고 {규원사화}를 도가사학의 대표로 간주한다. 그는 {규원사화}에서 도가사상의 원류를 한국에 두고 중국의 도교를 신도(神道)의 아류로 보았다는데 주목한다. 이렇게 사상적 축을 단군에 두면서 존화사상(尊華思想)을 배척하고 청과 연합하여 한을 정벌함으로써 동이문화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지키자는 것이 그 기본입장이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민족 주체적 경향에 관해서는 이상택(李相澤)의 "한국 도가문학의 현실인식 문제\\"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윤사순(尹絲淳)도 "한국사상의 일제잔재"라는 논문에서 유교에 입각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는 불교에 입각한 일연의 {삼국유사}가 더 주체적이고 민중적이며 {삼국유사}보다는 도교에 입각한 {규원사화}가 더 사대성을 탈각하고 민족본위의 자주적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볼 때 {규원사화}의 역사의식에는 복고적 순환적 역사의식과는 달리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개화기에 이르러 신채호(申采浩) 등의 민족사학자나 동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밖에 이병도의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는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신선설화적 요소를, 이내옥의 "연개소문의 집권과 도교\\"에서는 정치사회적 배경과 도교와 상관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최근에는 고구려 벽화의 신선사상이 {산해경(山海經)}의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이는 도교 성립이후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중국 동북부를 포괄하는 넓은 지역의 토착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도교와 민간신앙 신종교와의 교섭관계에까지 관심이 넓혀진 것도 이 시기의 중요한 성과라 말할 수 있다. 김태곤의 "민간신앙의 도교적 경향"에서는 민속 중 도교적 요소와 중첩되는 부분 및 도교적 영향이 강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그는 한국민속 중에 가장 널리 나타나는 성황(城隍), 칠성(七星), 조왕신앙 등의 세 가지가 도교에서 유래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밖에 박경화의 "고려시대의 도교와 민간신앙," 이은봉의 "토속신앙과 풍수도참사상의 발달"과 조흥윤의 "조선전기의 민간신앙과 도교적 성향"에서도 민간신앙의 도교적 경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에서 보이는 도교와 불로장생"에서는 도교사상과 신종교의 관련성을 논의하고 있다. 동학사상에 끼친 도교사상의 영향을 고찰한 논문으로서는 신일철의 "동학사상의 도교적 성격문제"가 있다. 이밖에 도교사상이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김홍철의 "한국 신종교에 나타난 도(道), 불(佛) 교섭" 에서, 도교사상과 원불교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양은용의 "한국도교와 소태산사상(少太山思想)"에서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증산교와 원불교에 영향을 끼친 {정심요결(正心要訣)}이란 자료가 발견되어 그 도교적 성격에 관한 집중 탐구가 이루어진 바도 있다.

둘째, 이 시기에 특기할만한 것으로서는 관련자료가 발굴되고 이에 관한 고증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양은용의 "복원궁(福源宮) 건립의 역사적 의의"에 의해 고려 중엽의 복원궁에 관한 자료가 상세하게 밝혀진 것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고증된 것이 그것이다.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서는 김시습의 『수진론(修眞論)』이나 정렴의 『용호비결(龍虎秘訣)』 등이 자료로서 실려 있는 정도이나 {해동전도록}의 전문이 소개된 것을 필두로 권극중의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 작자 미상의 {직지경(直指鏡)}과 {중묘문(衆妙門)}, 강헌규(姜獻奎)의 {참동계연설(參同契演說)}, 서명응(徐命膺)의 {참동고(參同攷)}, 곽재우(郭再祐)의 {양심요결(養心要訣)} 등이 알려진 것이 그것이다. 최근에 소개된 전병훈(全秉薰)의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이나 백운산인(白雲山人)의 {선불가진수어록(仙佛家眞修語錄)}도 주목할만한 자료이다. 특히 김윤수의 "주역참동계연설과 농려(農廬) 강헌규(姜獻奎)" 및 "서명응의 참동고와 역참동계상석(易參同契詳釋)"에서 고증작업과 그 사상적 맥락을 잘 분석하고 있다. 도교 관련자료가 빈약하고 이에 관한 고증이 소홀히 취급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자료가 발굴됨으로써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의 자료범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한국도교 연구의 바탕이 되는 중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성과의 축적은 한국도교 연구의 수준을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국도교의 연구방법에 관한 반성의 일환으로서 개념의 사용 문제가 논의된 것도 주목할만하다. 엄밀한 개념의 사용이 효과적인 학문적 탐구에 매우 중요함을 고려하면 이 논의는 늦은 감이 있다. 이들 중요한 개념들에 관한 합의는 간단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빈번히 사용되는 것들에 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수련도교에 관한 용어들은 학문적 여과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란이 되는 개념들은 도가와 도교의 구별문제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1) 성립도교(成立道敎), 교단도교(敎團道敎), 교회도교(敎會道敎), 과의도교(科儀道敎), 민간도교(民間道敎), 관방도교(官房道敎), 민중도교(民衆道敎) 등 도교의 제 양상을 분류할 때 사용되는 개념들.
(2) 단학(丹學), 기공(氣功), 내단학(內丹學), 내단사상(內丹思想), 연단술(煉丹術), 선도(仙道), 선학(仙學), 수련도교(修練道敎), 기공양생학(氣功養生學) 등 도교적 수련의 체계에 관련된 용어들.
(3) 신선(神仙), 선인(仙人), 진인(眞人), 성인(聖人)등 도교의 이상적 인격에 관한 표현들.

발흥기와 정착기를 거치면서 한국도교 연구는 상당한 탄력을 얻게 되어 1990년 후반에는 학제간의 연구나 국제교류를 통한 협력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다음의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한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문학의 영역에서 촉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도교에 바탕한 도교적 문화현상에 대한 관심이 위주가 되고 도교자체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된 점이다. 그 결과 도교의 다양한 문화형태의 파악에는 기여했으나 도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미진한 결과를 낳았다. 둘째, 자료의 발굴이나 문헌비판 등의 작업이 상당히 이루어지긴 했으나 아직도 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이는 국사학계에서 도교에 관한 관심이 빈약한데서 초래된 점도 있다. 특히 한국도교의 원류를 찾는 작업에서 의존하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記古事)},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의 고증작업은 시급히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연구자들이 도교 자체에 대한 연구역량이 부족한 관계로 일본이나 중국의 도교연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를 반성하여 한국도교를 연구하는데 앞서 도교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중국도교에 대한 연구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으나, 아직은 기초단계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사회에는 한국도교 연구와 관련된 중요한 외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째 민족주의적 관심의 고조와 함께 한국 고유의 선도(仙道)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흥기된 것이다. 80년대에는 한편으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욕구에서 사회과학적 관심이 지대했던 반면 민족 고유의 정신을 찾자는 움직임도 상당하였다. 이 움직임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어 수련 및 양생관련 서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기공학(氣功學), 기과학(氣科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에 결성된 한국정신과학회는 기적(氣的) 현상을 비롯한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는 목표 하에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어 한국도교 연구에 큰 자극을 주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이러한 관심의 결실로서 최근에 명지대학교 대학원과 수원대학, 원광대학교 대학원에 기공관련 전공이 개설된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이들 전공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알기 어려우나 한국도교 연구에 긴요한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V. 맺는 말 

 
앞에서는 한국도교에 관한 연구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대체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는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척적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교가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보는 견해를 발견하기 어려운데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유, 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도 도교학의 역사가 아직 일천하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도교의 개념이나 연구범위에 관한 문제가 아직도 논의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요인 외에도 한국도교의 현상이 지닌 특수성에도 원인이 있다. 한국도교는 불교교단이나 유교의 유림처럼 뚜렷한 자기 모습을 지닌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도교현상 가운데 비교적 뚜렷한 도교적 모습을 지닌 것으로서는 과의도교(科儀道敎)와 신선사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과의도교는 국가행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것도 조선조 중엽 소격서(昭格署)가 혁파된 후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선사상의 경우는 은둔적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것이므로 역시 도교적인 외형이 분명하지 않다. 이 밖에 도교적 요소는 대부분 민간신앙이나 불교사상, 유교사상 등과 혼합되거나 문학, 예술 등에 묻혀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도교 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자료의 발굴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러 상당한 자료가 발굴되어 한국도교 연구에 기여한 바 있었으나 더 많은 자료발굴이 요청됨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들 자료를 엄밀하게 고증하고 국역하는 작업도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역된 자료들이라도 오역된 부분이나 부정확한 주석이 발견되므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보다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연구자료의 정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한국도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접근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도교적 요소나 영향을 탐구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의 도교학계에 국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공학자들이 모여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문학 분야에 연구 업적이 치우쳐 있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폭넓게 참여하지 못한 것이 눈에 띈다. 자료발굴이나 자료의 해석에서 국문학 분야에서는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으나 한의학, 예술, 과학, 체육, 민간신앙 등의 제 분야에서는 아직 불충분한 실정이다. 특히 국사학계에서 도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셋째,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의 심도를 높이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접근방법이 효과적이긴 하나 이것은 자칫하면 다양한 문화현상에 남아 있는 도교적 편린을 찾는데 그치고 도교현상을 일관하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시각에서의 연구도 곧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철학이나 종교학적 시각에서 도교사상 자체에 대한 탐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도교적 세계관이나 신론, 인간관, 사회사상, 가치관, 실천론, 종교적 의례 등에 관한 기초적 지식이 축적되어야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가철학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이런 면에서 요즈음 중국도교의 원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성과들이 국내에 많이 번역, 소개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물들이 실용적 관심을 충족시키는데 급급하여 학문적 가치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유감스럽다. 특히 수련도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출판된 많은 번역물들은 엄밀한 학문적 검토 자세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일본의 도교학은 불교학의 성과가 축적된 후, 이것이 불도교섭사(佛道交涉史)로 이어지고, 여기서 다시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 다음, 이에 바탕을 두고 일본도교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따라서 일본도교를 탐구하는 경우에도 중국도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이 된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불교학적 시각이 잠재되어 있어 도교에 대한 비판적 선입견이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의 도교학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 이단적 사고나 민간문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함께 발전하였다. 따라서 그 동안 간과된 측면들을 재평가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사회주의나 과학주의적 시각의 표방으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한국의 도교학은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현상을 이해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한국 도교학의 효시인 이능화의 일차적 관심은 국학의 진흥이라는 애국적 동기였으며 도교자체의 이해는 부차적 문제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까지 은연중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장점이라면 한국도교 내에서 중국도교의 아류가 아닌 한국적 고유성을 찾으려는 문제의식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도교학 자체의 역량이 성숙하기도 전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는 것을 단점으로 들 수 있다. 따라서 도교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켜 한국적 고유성에 대한 특유한 정서를 여과시키는 것이 이제부터의 과제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논의되었던 쟁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학문적 성숙에 필요할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에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된 기공, 단학, 기과학 등에 대한 관심을 학문적으로 여과시키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넓은 의미의 도교적 현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잠복해왔던 도교적 수련이 대중적으로 표면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그 동안 주로 문헌 자료를 통하여 추체험을 통해 도교적 사유를 이끌어내는데 연구가 집중되어 온 것과는 상황이 다르게 된 것이다. 이들 현상이 직접, 간접으로 사회적 영향을 끼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정한 정도로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현상조사를 비롯한 사회학적 접근도 필요하며 이론이나 실천방법론을 철학적, 종교학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전통적 도교적 사유와의 관련성 문제도 관심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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