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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명의 에너지오르가즘혁명7] 친숙한 아내에게서 깊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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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아내에게서 깊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유
 
 
 


동서양고 오랜 인을 막론하류의 역사 동안 성의 쾌락과 생식 행위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테면 부부관계에서 번식을 위한 성만 인정하고 성적 쾌락을 배제한다든가 쾌락을 인정해도 생식을 위한 성행위만 인정한다든가 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쾌락과 분리하여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부부 윤리는 남성의 외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해왔다. 일찍이 그리스의 저술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쾌락을 위해 창녀를, 매일 매일의 시중을 위하여 첩을, 또 합법적 후손과 가정의 충실한 관리를 위하여 아내를 얻는다."
말인즉슨 정숙한 아내에게서는 합법적 후손을 얻기 위한 성행위만을 하고, 성적 쾌락은 음탕하고 능숙한 창녀에서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한다`는 동양의 고사성어도 비슷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밥은 서쪽에서 먹고 잠은 동쪽에서 잔다는 의미이다.
 
부부관계에서 정숙한 아내상을 강요하고 성적 쾌락을 애써 피한 행위는 집 밖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폐해를 낳은 셈이다. 사실 현대에 들어 부부관계가 무덤덤해지는 이유는 쾌락과 생식의 분리보다는 부부관계의 매너리즘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오래 살다가 보면 진짜 가족처럼 느껴져 끈끈한 애정이나 뜨거운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적 삶은 공유하지만 성생활은 따로따로 가는 경향으로 변모되어 버린다.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성적 매력을 상실하는 이유는 올바른 성생활의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방식의 소모적이고 지루한 성생활 패턴의 반복에 의해 상대가 지겨워지거나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성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에너지를 관리하고 보존하며 몸으로 순환시키는 성생활은 쌍방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과 기쁨을 매번 선사한다. 이런 성생활의 즐거움은 말초적 신경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깊은 내적 에너지가 일깨워지고 교환됨으로써 얻어지는 충만감이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며 내적 세계가 열리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나와 상대가 끊임없이 변모되며 발전된다. 매번 새로운 성감대가 열리며 색다른 느낌이 다가온다.
 
이러한 깊고 완전한 결합과 융합 관계는 오히려 익숙하고 친밀한 파트너에게서만 가능하다. 새로운 파트너에서 한때의 짜릿한 쾌감은 얻을지언정 깊고 오묘한 교감과 유대감은 기대할 수 없다. 멀리서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파트너를 명기로 만들고 명도로 거듭나게 가꾸어보라. 참다운 사랑의 마법이 시작될 것이다.
 
부부 관계는 육체적 결합과 삶의 공유가 함께 할 때 더욱 조화롭고 완전해진다. 경제적 공동체나 가족 공동체로서만이 아니라 성과 사랑에 의한 결합이 더해질 때 부부의 완전한 융합이 가능하며 참으로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 생활의 기술은 자제와 자기 연마의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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